영원한 휴가
당연하고 익숙한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쩌면 용기가 가장 먼저 필요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필연적이고 고유한 질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관습화된 결과라서 처음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을 알 수 없는 체제의 변화 시도는 굵고 깊은 뿌리의 나무를 제거하려는 의지와도 같아서 사실상 무모하고 공허하다. 하지만 아득한 과거로부터 가해지는 가속도보다는 불규칙적 제동이 오히려 현재를 갖추고 있음은, 그 수많은 예시를 여기에 언급하지 않아도 보편적으로 이해된다. 도전적인 제동의 가치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우리 삶의 매 순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진균의 《영원한 휴가》도 헤아릴 수 없는 결과에 던지는 무모한 용기로부터 시작됐다. 부모와 자녀를 비롯한 가족 관계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 질문은 사진이라는 매체 탐구로 이어진다. 그 확장의 과정을 살펴보며 작가의 도전을 가늠해보자.
안진균 작가는 정립된 역사만큼이나 단단한 ‘형질의 지속성’을 거부하면서 이를 사진 매체 속성에 견주어 전복을 시도한다. 견고하다 못해 불변한 생물학적 이론에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의심을 사진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훼손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부모와 자식 간 종속되는 닮음 체계가 사진의 재현성과 닿아 있다고 여기면서, 사진의 체계를 흩뜨려 종속에 대한 간접적 공격을 개시했다. 특히 전시에 쓰인 사진은 모두 작가의 가족 앨범에서 온 것으로, 기억의 편집성을 대변한다. 가족 앨범은 특별하고 귀한 순간만 선별된 결과임에도 지나온 시간을 통째로 표상한다. 그 때문에 기록 순간 이외의 시간은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편향적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이 점에 천착하여 앨범에서는 누락되었지만, 우리의 기억과 의식에 자리 잡은 요소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훼손의 구체적인 방법은 차단으로 이어진다. 시각적으로 박제된 순간의 이면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사진이라는 시각 자료를 오히려 가린다. 보기 위해 기록된 장면에 의도적인 편집을 가한 후 부분만 보여줌으로써 비가시적 영역을 조명하는 것이다. <영원한 미소들>은 장면의 주인공이 짓는 미소를 가로지르는 긴 틈새만을 남기고 흙으로 덮인 사진으로 구성되는 시리즈다. 사진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그 틈새는 실제로 굉장히 얇고 좁아서 본래 장면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특히나 바닥에 눕혀두는 설치 방식은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혀야만 겨우 볼 수 있어 시각 자료의 기능을 왜곡하기도 하며, 부풀리듯 커진 이미지의 크기는 맥락을 상실한 정황만을 전달하고 있다. <영원한 미소들>은 사진의 전형적 의미를 훼손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면서 재현성을 무너뜨리고 시공간적 맥락이 단절된 진공 영역으로 사진들을 밀어 넣는다.
작가는 <영원한 다리들>을 통해 차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전까지 꾀한다. 기념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렷 장면에서 다리를 제외한 부분을 가리되 위아래를 뒤집어 물구나무선 사람의 하반신이 연속되도록 연출했다. 차단의 기준점은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등장인물의 복장에 따라 달라지지만 90개의 이미지가 모두 비슷하게 구성되어 마치 수평선처럼 연결되어 보인다. 특히 고꾸라지듯 박힌 이미지들은 단단한 판재와 함께 전시장을 점유하면서 사진의 부동성을 촉각적으로 상기하는 반면 잘려 나가고 반전된 장면은 사진 매체의 재현성과 고정성을 능동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영원한 다리들>은 작가가 자극하고 거절하고자 하는 사진의 성질 그리고 그것의 무력함을 동시에 제시하면서 사진이 가지는 고유 질서를 무산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의 훼손을 조금 색다르게 바라봐야 한다. 비록 사진을 가리고 잘라내고 뒤집었지만, 삭제나 분해와 같은 파괴적 행위가 아닌 보완하고 확장하는 훼손이라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평면적 사진은 흙이라는 가림막과 나무 판재 장치를 통해 질감과 부피를 부여받고, 바닥에서부터 공간을 점유하는 설치는 가족 앨범에서 구출된 사진에 또 다른 면모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가족사진이라는 선형적 요소는 전시 공간과 전략적으로 조우하며 관람자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안진균의 도전적 발화는 사진 매체에 종속되는 인식의 한계 극복을 제안한다. 덕분에 우리는 죽음을 연상하는 무덤과 비석의 구조를 종말적 이미지가 아닌 대안을 위한 필연적 절차로 받아들이고, 예술의 실천적 가능성을 체험할 수 있다.
전시는 해변에서 준비운동을 하는 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상 <영원한 휴가를 위한 준비운동>으로 마무리된다. 은퇴할 때 은유적으로 쓰이는 표현인 ‘영원한 휴가’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특정 시공간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영원한 쉼은 즐겁기도 하지만, 현재와의 결별을 전제로 하는 탓에 아쉽기도 하다. 그렇게 완연히 다른 장면으로 다가올 전환점을 마주하는 준비운동에는 적당한 담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영원한 휴가》는 꽤 도발적이다. 좀 더 유연한 현재 형성을 향한 의지로 정지 상태의 과거에서 일탈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안내하는 준비운동을 따라 우리의 지난 시간을 더듬어 나가면서 현재와 미래를 확장해나가 보자.
이지민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
Permanent Vacation
In order to change what is absolute and conventional, the first and foremost thing one needs is perhaps courage. As the inevitable and inherent order that surrounds us is the result of a long process of developing customs, it is difficult to imagine the beginning. Therefore, any attempt to change the system with an unknown origin requires a will to remove a deeply rooted thick tree, and is, in fact, reckless and empty. However, it is commonly assumed, needless to present the numerous examples here, that the present is established by irregular brakes rather than by accelerations driven from the distant past. The value of defiant interventions, needless to say, is affecting every moment of our present lives. Jinkyun Ahn’s exhibition Permanent Vacation also began with courage, seemingly reckless, that might create immeasurable results. The artist’s fundamental question about family relationships, including the on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has led to the artist's exploration of the medium of photography. This inquiry by the artist can be assessed by examining the process of his artistic expansion.
Jinkyun Ahn attempts to subvert by rejecting “the persistency of traits”, which is as solid as the established history, comparing with the properties of photography. By questioning the rigid and immutable theories of biology, he justifies these doubts upon photography. His effort starts with the act of damaging. The artist initiates an indirect attack on the system of subordination by disrupting the order of photography as he believes the system of resemblance that activates the power structur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parallels the system of photographic reproducibility. In particular, all the photographs as material used in the exhibition are from the artist’s own family photo albums, which represents that memories are editable. Even though a family photo album contains only a selection of the family’s most special and precious moments, it represents the family’s history as a whole. Therefore, it is even biased in that it cannot guarantee the times other than the moments recorded on the photographs. Considering the defect, the artist decides to look into the elements that are omitted from the album, but are established firmly in our memories and consciousness.
The specific method for damaging leads to exclusion. As an effort to emphasize the hidden side of the visually frozen moment, he rather hides part of the visual information of photographs. In other words, he sheds light on the invisible sphere by allowing viewers to see only the part of the scenes edited according to his intention. Permanent Smiles is a series of photographs created by covering the surface with soil except for a long and narrow gap crossing the smile of the subject in the scene. The gap, which is the only part to be viewed, is significantly thin and narrow, making it difficult to depict the original scene. In particular, the installation method of laying on the floor perverts the original function of visual material because it can only be seen by squatting or bending over, and eventually the enlarged size of the image conveys only the circumstances where the context is lost. Permanent Smiles collapses the photographic reproducibility by reflecting the artist’s intention to violate the conventional purpose of the medium, forcing the photographs into a vacuous sphere where the temporal and spatial contexts are cut off.
Through Permanent Legs, the artist takes one step forward from exclusion to reversion. The lower halves of the human bodies are presented upside down by covering the parts beyond the legs from the ‘stand up straight’ photos, commonly found in family photographs. The reference point of exclusion is the starting point of the legs, differing according to the outfits of the characters. A total of 90 images are arranged in a similar manner as if they are connected like a horizontal line. In particular, the images fixed upside down occupy the exhibition space together with solid wooden bars, tactually reminding of the static nature of photography, while the cut and inverted scenes actively denies the reproducibility and fixity of the photographic medium. Permanent Legs invalidates the inherent order of photography by presenting the properties of photography that the artist provokes and refuses and their impotence simultaneously.
However, we need to consider the damage caused by the artist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The artist covers, cuts off and turns photographs upside down, but it is not a destructive act of deletion or dismantlement but one for complement and expansion through damaging. The two-dimensional photograph is given texture and volume through the screen of soil and the device of wooden bars, and the installation elements that occupy a space from the floor bestow a new aspect on the photographs rescued from a family photo album. The linear element of a family photograph encounters the exhibition space in a strategic way, providing various experiences depending on the viewers. The provocative articulation in Jinkyun Ahn’s work proposes overcoming the limitations in the perception subordinate to the photographic medium. We would embrace the structure of the graves and tombstones on the strength of his art, that remind viewers of death, as an inevitable procedure for alternatives rather than an apocalyptic image, and experience the practical possibility of art.
The exhibition concludes with Warm-up Exercise for Permanent Vacation, a video of a family doing a warm-up exercise on the beach. As the metaphorical expression often used to mean retirement, “permanent vacation” contains a dual meaning. The eternal rest we encounter beyond specific time and space might be joyful but could also be unfortunate as it presupposes parting from the present. Wouldn’t it be necessary to have a certain level of courage for us to warm up and face the turning point, which leads us to a completely different chapter? Permanent Vacation is somewhat provocative in that sense. This is because it attempts to depart from the stationary past with the will to form a more flexible present. Now then, let’s expand our present and future by exploring the past as we follow the warm-up exercise guided by the artist.
Jimin Lee | Curator, Seoul Museum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