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ever I return home in Seoul Korea from studying abroad, one of my first responsibilities as the eldest grandson is to visit my grandparents’ burial sites as a sign of respect. Nearby their burial sites is an empty plot where my parents will also one day be buried. On one of the visits, I was standing in front of the plot, staring at the well-kept lawn and the meaningless landscape behind. And at the moment, calmly, my parents walked into my line of vision as they were actors appearing on stage. Suddenly, I realized that the very spot where I was standing carries binding force that I would stand on my parents’ funerals and thereafter in the rest of my life on a regular basis. I could not stop the inevitable transformation of the view from living parents to graves nor could I turn away from the view where my parents’ deaths will be evident. Like the chained slaves forced to watch illusions in Plato’s cave, I am bound to observe a scene of my parents’ death in the graveyard.

In the project En Cave, I construct my own ‘cave’. In an anonymous interior space, with white cloth hung from the ceiling, I shape a cave that does not exist. In this frail tent, my parents and I act out the allegory of Plato’s cave. With the use of shadows and projections as well as our own family dynamic by performing the Confucian tradition of bowing down to one’s parents, we appear on stage as actors. Photography records the entire system of the cave and the record is fossilized photographically. The frame not only includes photographic equipment such as light stands and electric wires but the interior space that incubates the stage. The total apparatus is exposed rather than hidden; my photographic process is photographed explicitly.

Photography seems to deliver visual facts through the images printed on its surface. However it is merely a form of chemical or electronic mimicry on a two-dimensional material. I find this illusionary cognition to be analogous to my own life. My own familial relationship appears to be authentic but I question it might be a mere simulation enforced by dominant cultural influences. In my photographic tableaus, just as a photograph duplicates an optical fact, I replicate my familial roles in the form of performance. Photography and I share the same inherent nature of imitation, and the former amplifies the latter by its inherent nature of reproducibility.

서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는 첫 번째 임무는 조부모님의 묘소를 방문하는 일이다. 그 묘소들 가까이에는 부모님 자신들을 위해 마련한 자그마한 빈터가 있다. 나는 빈터 앞에 서서 잘 정돈된 잔디밭과 그 뒤로 펼쳐진 의미 없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마치 무대 위에 입장하는 배우들처럼 나의 시야 안으로 두 분은 말없이 걸어들어오셨다.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가 부모님의 장례식 날 그리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돌아와야 할 구속의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 눈앞에 계신 살아계신 부모님의 ‘상(像)’은 영원히 움지이지 않을 무덤의 ‘상’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나는 무력함으로 맞서고 있었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Plato’s Cave)’ 안에서 묶여있던 노예들처럼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작품 ‘Encase’ 에서 나만의 ‘동굴’을 건설한다. 텅 빈 실내공간 안에 하얀 천을 투명한 낚싯줄에 매달아 실존하지 않는 동굴의 형태를 만든다. 이 연약한 천막 안에서 나와 부모님은 플라톤의 동굴과 같은 은유의 무대를 창조해낸다. 이 무대 위로 그림자와 디지털 프로젝션을 통해 우리는 가족구성원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로 등장한다. 무대가 만들어지는 전체의 광경은 사진을 통해 기록되고, 그 기록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화석화된다. 사진의 프레임은 나와 부모님뿐 아니라 조명기기와 케이블 같은 사진촬영장비들 그리고 그 무대를 품고 있는 공간마저 아우른다. 촬영 현장의 총체적 체제는 숨겨지기보다 폭로되고, 사진 작업의 과정 자체가 사진의 대상이 된다.

사진은 그 표면에 인쇄된 이미지를 통해 일어난 사실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진은 이미지를 화학적 혹은 전기적으로 흉내 낸 이차원적 물질에 불과하다. 이 역설을 빈터 앞에 서 있던 나의 모습에 대입해보면 보고자 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한 문화와 규범, 그리고 유전에 종속된 일종의 흉내 내기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마치 사진이 광학적 사실을 기계적으로 복사해내듯, 나는 유교적 관습인 절하기로 부자 관계를 관습적으로 모방하고 상징한다. 사진과 나는 모방이라는 내재적 본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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